종교 이야기

좋은 교역자란 퇴직할 때를 보면 알 수 있다

흠 집 내 기 2016. 11. 27. 15:58

 모든 사람이 퇴직할 때가 되면 노후를 걱정하게 된다.
노후는 현실이니까.
 
대형교회의 목사님이 퇴직을 하게 되면,
퇴직금과 공로금(전별금)과 집과 차와 연금을 받는다.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일부 대형교회만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재정이 어려운 교회의 경우는 퇴직금도 못 받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한다.
일평생을 일했는데도, 교회의 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온전한 퇴직금을 못 받고 위로금 명목의 적은 액수의 퇴직금만 받고 은퇴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빚을 내서까지 목사님의 퇴직금을 드리는 것이 교회측에서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온전한 퇴직금을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건만 빚을 내서라도 그것만은 꼭 지켜야할 사항이건만 안타깝다.

은퇴 목사님은 후임 목사님이 사용할 수 있게 사택까지 비워줘야 한다. 그렇다면 당장 누울 집까지 잃어버리는 셈이다.
은퇴를 하는 동시에 노부부가 노후에 먹고 살길이 막막한 암담한 상황에 처해지는 것이다.
그에 반해서, 몇몇 교회의 돈 욕심을 부리는 목사님들을 보면 또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조금이라도 더, 조금이라도 더, 챙겨서, 노후 대비하기 위해서 교회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풍문으로 들은 얘기를 풀자면,
어떤 목사님은 은퇴시기가 다가오는데 교회에 돈은 없으니, 재정 장로님을 꼬드겨서 교회 명의로 빚을 내서 목사님의 넉넉한 퇴직금과 전별금을 만들었다는 애기를 들었다.
그 목사님이 은퇴하시고, 그 교회는 목사님이 챙겨가신 만큼의 빚더미에 앉았다.

또 들은 얘기가 있다.
십수 년 전 강대상에서 후배 목사님들의 앞날을 위해서 조기은퇴를 선언했던 목사님이, 
시간이 흘러 본인이 선언했던 그 조기은퇴 나이가 점점 다가오니,
슬그머니 설교 중에 원래 재단의 은퇴나이를 언급하며 일찍 은퇴할 뜻이 없음을 기간을 모두 채우고 은퇴할 것임을 드러냈단다.
하나님과 수많은 교인들 앞에서 선언한 말을 뒤엎은 것이다.
심지어 그것은 강대상 앞에서 한 말이 아니던가.
하나님과의 약속이 아니던가.
목사님은 왜 강대상에서 하신 말씀을 번복하셨을까?
분명 그때는 그럴 마음으로 공표하신 것일지언데.
왜일까?  금전적인 욕심과 손안에 틀어쥔 권력을 놓기 힘들기 때문이다.
잠깐 부끄럽고 잠깐 민망하기만 하면 몇년 동안 더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배를 위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본인을 위하는 마음만 남았기 때문이다.
교역자도 인간일 뿐이다.
노후를 풍요롭게 보내기 위해 금전적으로 넉넉히 비축하고 싶은 욕망을 내려놓지 못한 것이다.

참고로 후일담을 전하자면, 그 목사님은 자신의 꼼수 계획과는 별개로 본인이 강대상에서 공표한 그 나이에 퇴직하셨다.
하나님은 그 목사님이 오래전 강대상 설교에서 선포하고 약속한 조기 은퇴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실행하시고 받아가셨다.
 
또 들은 얘기가 있다.
내가 아는 담임목사님은 퇴직 후에 금전적 이익을 더 얻고자 머리를 쓰신 분이 계시다.
교회에서 책정한 매달 받는 연금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받아낼 수 있는지를.

담임목사님이 은퇴하시면 퇴직금 외에도  매달 연금을 지급한다.
공무원은 일시불 퇴직금과 매달 연금 중애 하나만 선택할 수있다.
하지만 교회는 담임목사님의 경우에 둘다 준다.
퇴직금도 주고 연금도 준다.
연금의 경우는 최종 급여의 기본급을 매달 지급한다.
기본급 전액을 지급하기도 하고 기본급의 몇 프로를 정해서 지급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그 기본급를 올리고자 상여금을 없애고 연봉에 흡수하게 고치려고  한다. 그러면 기본급 금액이 오르기 때문이다. 일명 꼼수다.
정년을 코앞에 앞두고 부랴부랴 바꾸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기존의 방법을 본인에게 유리하게 바꾸면서까지.
이건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이것에 대해서 내가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아마도 그곳이 교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교회에 바라는, 교역자에게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부의 담임목사님들의 이야기다.
존경받는 목사님이 퇴직시기에 인간적인 세속적인 모습으로 바뀌는 일부의 목사님들의 이야기일뿐이다.

그럼에도 교회는 존경할 만한 분들도 훨씬 많다.
내가 아는 분이나 들은 얘기를 하자면,
1. 아픈 교인에게 기꺼이 장기를 떼어준 목사님도 계신다.
2. 교회측에서는 목사님의 체면을 위해서 고급차를 제공하려 했으나,
   교회 규모와 형편에 맞지 않다며 한사코 마다하고 소형차를 직접 몰고 다니는 검소한 목사님도 계신다.
3. 박봉의 사례비에서 몇 만원씩 떼어서 형편이 어려운 교인들에게 매달 구제금을 은밀하게 전달하는 교역자분들도 계신다.
 
이런 훌륭한 교역자분들까지 몇몇의 자기 이익 챙기는 목사님들로 인해 동급 취급을 당하며 욕을 먹는다.
부익부 빈익빈 세상처럼 교역자분들의 삶도 심한 양극화된 삶을 보여준다.
 
내가 만나본 부교역자분들은 참으로 훌륭한 분들이 많이 계신다.
부교역자는 담임목사님의 목회방향을 도와주는 목사와 전도사님을 일컫는다.
내가 만났던 부교역자분들은 자기 희생을 기본 옵션처럼 달고 일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담임목사님들이 되시면 욕심이 생기시는 모양이다.
일명 권력이 손아귀에 틀어 쥐어지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에 모든 사람들이 굽신굽신거린다.
반대 의견도 목사의 권위로 야단치면서 밀어붙여서 결론을 원하는 대로 추진시킬 수 있다.
그런데 그 권력을 신앙적으로 사용하셔야 하는데,,,
은퇴할 때가 되면, 그 권력이라는 도구를 본인과 본인 가정에게 이롭게 사용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긴다.
자기 이익을 챙기는, 그리고 안타깝게도 교회라는 곳은 누가 뭘 챙겨가도 별다른 제재가 없을 정도로 허술한 편이다.
그래서 신문기사에서 교회의 비리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초심을 잃지 말자.
 
좋은 목사님인지? 그냥 그런 목사님인지 모르겠다면?
은퇴할 때를 보라.
인간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어렵고 힘들어도 불안한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라고, 목사님들이 교인들에게 설교하시지 않는가.
그래놓고서 일부 목사님들은 그런 상황에서 미래를 신앙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방법을 모색하신다.
은퇴할 시기가 되면 담임목사님들도 불안한 미래에 놓인다.
그 상황 가운데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행동하고 계시는지?
끝이 좋아야 전반적으로 다 좋다는 말이 있다..
시작과 중간 과정이 아무리 좋았어도, 끝이 나쁘면 그간에 노고가 영광이 무너져버리고 만다.
평생 하나님과 복음과 교인을 위해서 살아왔어도, 말년에 본인의 이득만 생각한다면? 
그동안 복음 전파를 위해 고생한 긴 시간들이 아깝지 않는가.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하나님이 노후는 책임져 주실 거라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
 
최후의 순간?
하나님께 면류관을 받는 명예를 택할 것인가?
현실적인 안락한 노후가 보장된 돈을 택할 것인가?